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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성산일출봉 근처의 토끼섬. 녹색이 섬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식물은 바람과 비보다 훨씬 거대한 힘에 의지해 씨앗을 퍼뜨립니다.
매해 7월 정도면 그윽한 향기가 나는 꽃이 핍니다.
꽃이 지면 씨앗이 들어있는 씨방이 부풀기 시작하죠. 20여 개의 씨방 전부가 포도알 만한 크기로 커집니다. 이제 곧 떠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문주란은 일부러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씨앗을 키웠습니다. 쓰러지는 꽃대. 씨앗은 꽤 무겁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항상 육지보다 낮은 곳에 있죠. 문주란 씨앗은 무겁지만 부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쪽의 육지부터 출발해 바다를 건너 이곳 제주도까지 온 것이죠.
바다를 여행하는 동물입니다. 물범은 중국과 한반도를 오가며 생활합니다. 총 3500킬로미터를 이동하죠. 그런데 어떤 씨앗도 이 경로로 이동합니다. 힘센 꼬리와 날쌘 갈퀴도 없는 씨앗이 어떻게 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까요?
꽃핀 모습이 금빛 비 같다 해서 골든레인(Golden Rain)이라 불리는 모감주 나무 역시 바닷가에 삽니다. 꽃이 지면 씨방이 풍선처럼 부풀죠.
바다로 가기 위해선 먼저 바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바닷가엔 바람이 많이 붑니다. 바람은 씨방을 분리시킨 뒤 날려보냅니다. 씨방의 형태는 바람을 잘 받을 수 있는 구조. 씨앗은 120미터 밖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드디어 출항할 때가 왔습니다. 씨방은 바람을 받는 바람개비이자 물에 뜨는 보트. 씨앗을 배에 태우고 여정에 나섭니다.
모감주 씨앗이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육지에 도착하려면 겨울철 편서풍을 만나야 하고 다섯 달 이내에 총 350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이 맞아야 성공하죠.
그래도 식물은 모험을 택했습니다. 씨앗의 무모해 보이는 모험은 성공합니다. 이 모험의 결과가 이곳에서 황금빛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138호, 모감주나무 군락은 그렇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씨앗의 이런 도전과 모험 덕분에 식물은 영토를 넓혀가게 됩니다.
이러한 씨앗의 생존능력은 인간의 문명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씨엠립(Siem Reap)에 있는 사원을 무너뜨린 나무의 최초의 씨앗은 새들에 의해 옮겨졌습니다. 돌 위에서 싹튼 나무들은 물을 찾아 돌 틈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결국 사원을 가르고 부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나무들이 사원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무와 사원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무가 죽으면 사원도 무너지게 되어 있죠.
문명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있는 나무는 바로 무화과 나무입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800여 종이나 서식하고 있는 무화과 나무의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참고자료:
EBS 다큐 오늘: 무화과 나무의 무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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