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미국 워싱턴 주에서 가장 큰 도시, 시애틀 도심의 사무실과 작은 상점이 모인 상업지구에 들어서면 특별한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이 최첨단 빌딩이 세계에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건물이라는 걸 상상하긴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기술적 쾌거를 이룬 이 친환경 건물에는 총 4000제곱미터 넓이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습니다. 불리트 센터(Bullott Center)입니다.


기술은 이미 존재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이를 현실화할 통로를 만드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미국 친환경 운동가 데니스 헤이즈(Denis Hayes)가 불리트 센터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기획했고 2013년 4월 22일 지구의 날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지구의 날은 1970년 4월 22일 데니스 헤이즈가 하버드 대학생 시절 미국의 상원의원 게이로 닐슨과 함께 1969년 1월 28일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서 있었던 기름 유출 사고를 계기로 지구의 날 선언문을 발표한 것에서 비롯된 기념일입니다.


“이제 세상은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건설 기술이 조만간 사라질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더이상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우리가 물려받은 대기를 수 년, 나아가 수백 년 뒤까지 유지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불리트 센터로 시애틀 건설 업계에, 나아가 미 북서부 태평양 지역과 전 세계에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겁니다.


친환경이란 결국 인식의 문제입니다. 저 말고는 가능한 한 많은 방법을 한곳에 모으려고 한 사람이 없었어요. 어떤 건물은 태양열 발전기를 사용하고 어떤 건물은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소비하죠. 빗물을 모으는 건물도 있고 재생가능한 자재로만 지은 건물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동시에 시도한 건물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시도해본 거죠.”


건축가 크리스 로저스(Chris Rogers)가 이 놀라운 외관의 건물을 세부까지 꼼꼼하게 구상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지붕에 작은 구멍들이 보입니다. 살짝 기울어진 지붕의 직각사각형 태양열판 사이에 드문드문 간격을 두어 채광용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재현한 것입니다. 숲에서 고개를 들면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점점이 보이고 그 사이로 빛이 새어들어와 바닥을 빛내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지붕에 설치된 이 575개의 태양열판이 이 건물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1년 365일 공급합니다.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은 시애틀인 만큼 까다로운 도전이었습니다. 태양열은 워싱턴 주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 원이지만 이 지역은 흐린날이 많아 태양열판의 개수와 일조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 달라지는 태양열 발전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흐린날이 많지만 오늘날의 태양열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북유럽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이 기술이 시애틀에서 가능하다는 건 미국 어디에서든 활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름엔 필요한 전기보다 많은 양이 생산되고 겨울엔 소비량의 절반밖에 생산이 안 됩니다. 당연히 밤에도 생산이 되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측정되는 계량기의 수치가 1만 와트에 이를 때도 있지만 요즘엔 아무리 높아도 3400와트 정도입니다. 하지만 1년을 놓고 보면 이 건물의 전기 생산량과 소비량은 어느 정도 일치합니다. 그리고 남는 전기는 도시의 전력망에 공급할 수도 있죠. 불리트 센터는 에너지 면에서 완전히 자립적이며 신기술 덕분에 흐린날이 많은 시애틀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지하에는 이 건물의 모든 기술장비들이 모여 있습니다. 특히 공짜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자원인 빗물을 정수하는 기계입니다. 지붕에 모인 빗물은 다중의 여과장치를 거쳐 뒷편 콘크리트 방에 있는 20만 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대형 물탱크에 저장됩니다. 이 물탱크의 물은 사용하기 전에 녹아있거나 응고된 미세 물질을 거르는 필터를 통과해 정수됩니다. 그리고 박테리아를 걸러내는 필터, 바이러스를 죽이는 필터, 마지막으로 그밖의 모든 잡균을 제거하는 자외선 필터를 지나갑니다.



양쪽에 5대씩 10대가 있는 퇴비제조기는 건물에 있는 화장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안에서 회전장치가 배설물을 혼합하고 이를 분해할 호기성 박테리아와 접촉하게 합니다. 변기 배수 파이프 연결 각이 45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비누거품을 이용해 배설물 처리를 더 용이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또 배설물을 내려보내는 데 도움을 주는 게 순환하는 공기입니다.


모든 배설물이 이 기기로 모이면 호기성 박테리아가 분해해 유기성 발효물질로 만들고 이렇게 완성된 퇴비를 배출기로 꺼내기 전에 원적외선 살균기가 마지막으로 잡균들을 죽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는 토양을 비옥하게 해 동식물을 기르는 데 이용하게 됩니다.


수많은 자재 중에 좋은 자재를 찾는 것도 힘든 문제였습니다. 독성물질이 없고 안전한 건축자재를 찾기 위해 1600종의 자재를 검토했고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제외하거나 공장을 직접 찾아가 오염물질을 빼고 자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진 자재를 사용했습니다.


건물 관리에 사용되는 집기도 엄격한 기준에 따라 골랐습니다. 800킬로미터 이내에서 생산된 목재 중에 FSC, 즉 국제산림관리협의회의 인증을 받은 목재만 사용했습니다. 또한 목재를 장식이 아닌 골조에 사용했습니다. 내부에 보이는 목재 기둥들은 외부 지반까지 이어지며 건물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모든 것은 다양한 실험적 기술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우연히 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공의 기준이 매우 높았고 그래서 최소한의 요구치를 훌쩍 넘는 결과를 내기 위해 부가적인 분야의 기술들까지 끌어와 결합했습니다. 불리트 센터는 기존 건물보다 건축비가 23% 더 들었지만 친환경 자재로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연구하고 자재와 시스템을 시험한 덕분에 다음 건축가는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건물에는 주차장이 없습니다. 대신 이 건물엔 자전거 주차장이 있습니다. 직원들은 13킬로미터를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이것도 불리트 센터와 맺은 계약 중의 하나입니다.


“불리트 센터의 역할 중엔 이런 신기술을 알리고 주목받게 하는 임무도 있습니다. 매일 오후에 열리는 불리트 투어에는 건축가나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 참여합니다. 이 특별한 건물을 견학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죠. 매일 견학을 받고 고효율 친환경 건물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당국이 이런 유형의 건물을 허가하는 방형으로 정치적 결정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헤이즈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 어디든 이런 건물을 지으려고 하면 적어도 2000개의 법률과 명령에 저촉될 거라고요. 불리트 센터가 시애틀에 세워진 것은 진보 성향의 정부가 자발적으로 협력해준 덕분입니다.”


인근 주민들도 모두 불리트 센터 건립을 환영했습니다. 기후를 바꾸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어떤 일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단 것을 주민들도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주민들이 열렬히 건립을 지지해주었기에 불리트 재단도 주민들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공원을 새단장하고 공공건물을 짓고 또 불리트 센터를 공개해 불리트 센터가 하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리트 센터는 시애틀의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도심 안에서도 에너지 고효율 친환경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죠. 매달 수천 명이 미래 건축의 상징인 불리트 센터를 방문합니다. 또한 주변 주민들에게도 최고의 건물로 자리잡았죠.


다른 지역에서도 합리적인 건설비로 이웃의 지지를 받으며 이 경우처럼 도시에 친환경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고 친환경 건축에 관한 기존 규범을 뒤흔들며 대중에게 내일의 건축에 대해 자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기술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결합된 불리트 센터는 세계적인 친환경 건물로 녹색 건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줍니다. 차세대 사무건물이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수준과 형태를 보여주며 초석을 다졌기에 충분히 주목할 만한 건축물입니다.


이 건물은 자연친화적 건물에 부여하는 친환경 인증제도 중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리빙빌딩챌린지(Living Building Challenge) 인증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 명예로운 인증서를 받기 위해선 사계절 동안 계획대로 건물이 운영되는지 확인받아야 하고 이는 꼬박 1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2015년 4월, International Living Future Institute 에서 리빙빌딩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무렵엔 작은 건물 3개만 도전하고 있었죠. 그중 큰 건물이 불과 이 건물의 1/50 크기였지만 우리에게 도전 의욕을 불어넣었어요. 이젠 유럽과 호주, 아프리카 등 전 세계에서 250개 건물이 리빙빌딩챌린지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큰 건물은 영혼에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이 건물이 새로운 도시환경에 중요한 해답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비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소비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죠. 하지만 이 건물을 통해 이 경향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집니다. 여기서는 거의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이토록 망친 이유는 헐값에 에너지를 마구 소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환경적 원칙을 존중하며 조금씩 우리는 사회를 새로 구축해가야 합니다.”


참고자료

건강한 집 세계의 에코하우스(“Bullitt Center”. Écho-logis - Autonome. Prod. Frédéric Planchenault. TV5MONDE, France. 2015)

www.bullittcenter.org

https://en.wikipedia.org/wiki/Bullitt_Center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5/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